진천은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를 간직한 고장이다.
진천에는 ‘생거진천’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이를 풀이하면 살기 좋은 진천이란 뜻이다. 토지가 비옥하며 한해와 수해가 없어 농사짓기 좋고 인심이 후덕한 곳이란 평이 있었기에 이런 찬사가 나왔을 것이다. 이런 고유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진천은 ‘건강도시’란 개념을 추가해 진천이 살기 좋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진천의 풍요를 지탱해주는 큰 축은 이곳에 있는 세 개의 저수지이다. 아담한 크기의 연곡저수지는 아늑하고 고요해 진천의 숨은 명소라 할 만하다. 그리고 백곡저수지는 진천과 음성에 농수를 공급하고 있기에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진천을 비롯해 청원군과 옥산 등지까지 물을 대는 초평저수지도 만만치 않은 크기이다. 그리고 셋 모두 낚시의 명소로 이름이 높은데 연곡저수지는 호젓하게 낚시를 즐기기 좋고, 백곡저수지는 편리한 교통과 양질의 잉어 입질이 강점이며, 초평저수지는 다양한 어종과 얼음낚시에 최적화되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공통점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진천은 이곳들을 묶어 수변관광자원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 세 저수지 중 연곡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이는 곳이 바로 연곡계곡이다. 물과 숲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태실 등의 역사적 유적지와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만뢰산 자연생태공원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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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 탄생지에 화랑 무예 태권도 성지 표지석이 세워져있다.특히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는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화랑의 기상이 태권도로 계승되었다고 생각한 진천이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열며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그리고 이곳들을 지나 사자산으로 향하면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꿈을 품고 수행했다는 중악석굴과 그가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하늘에서 받은 검으로 두 동강 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단석,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의 불상인 사곡리 마애여래입상을 만날 수 있다.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인 두타산은 초평저수지와 연결되어 있어 함께 방문하기 편하고, 수백 년 전부터 봄과 가을마다 왜가리가 들락거리는 왜가리 도래지는 봄과 가을에 탐방하기 적합하다.
두타산 일대의 왜가리 도래지로는 매해 봄과 가을에 왜가리떼가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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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 탄생지 일대는 화랑촌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2
화랑 문화로 유명한 진천에서는 '화랑밥상'을 맛볼 수도 있다.김유신의 고향인 진천에는 화랑촌 마을이 있다. 최근 대세를 따라 급조한 곳이 아니라, 예부터 효자와 효부가 많아 조선 시대에 효자마을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은 인근에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보탑사, 만뢰산 등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그리고 국궁•태껸 체험을 통해 화랑의 기상을 접할 수 있고, 참숯가마가 있어 참숯공예를 배우거나 찜질을 즐길 수 있다.
보련산 자락에 위치한 보탑사는 고려시대의 사찰이다.
진천에는 특색 있는 사찰이 많다. 그 중 보탑사는 ‘김유신이 태어난 진천’이란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오랜 기간 번영했듯, 무궁한 발전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 통일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점이 보탑사 3층 목탑인데, 이는 못을 쓰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전통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아파트 14층 높이에 달할 만큼 높다. 게다가 황룡사 9층 탑 이래 처음으로 3층까지 오를 수 있게 지어져 있어, 황룡사 탑의 후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비단 그 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단 3기뿐인 고려 시대의 백비와 연곡사지 3층 석탑이 있어 보탑사를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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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는 경내의 곳곳이 매우 아름다운 사찰로도 사랑받는다.보탑사를 벗어나도 진천 곳곳에서 사찰과 불상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선 진천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도록 봉화산 중턱에 자리한 대흥사, 고려 초 조성되어 폐사에 방치된 석불을 옮겨와 새로이 지은 만성사, 진천 제일의 명당으로 일컬어진 자리에 세워진 성림사, 두타산의 영기를 받은 약수와 귀한 채색 괘불이 있는 영수사 등의 사찰이 있다.
그리고 하반신을 조각하지 않은 특이한 고려 시대 불상인 진천 산수리 마애여래좌상, 얼굴과 목 부분이 없어졌지만 전체적인 신체 비례가 뛰어난 진천 태화4년명 마애불입상, 왜적이 장수로 착각하고 두려워하며 도망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용화사 석불입상 등의 불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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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4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 77호로 지정되어 있다.한편, 진천에는 불교 신자 못지않게 천주교 신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조선 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졌고, 최초의 교리서 ‘천주가사’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런 흔적들과 27기에 달하는 순교자들의 무덤을 모아, 1976년 배티성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십자가의 길’이란 이름의 청동으로 된 길이 깔려 있고, 진천에서 활동했던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이 재현되어 있어 천주교인들의 순례지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진천은 충절의 고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위인이 많다. 그런 만큼 그들과 관련된 유적 또한 다양한 편이다.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인 길상사를 시작으로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조감 선생을 기리는 사당인 만뢰사, 임진왜란과 이몽학의 난 등에서 활약했던 문신인 이시발의 신도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이영남 장군 묘소, 조선 선조 때 문신인 신잡의 영정을 모신 노은영당, 송강 정철의 신도비와 유물이 있는 정송강사,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외교가인 신헌의 고택,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였던 이상설 생가, 일제 말기 교육자였던 안승갑 고가 등이 산재해 있어 진천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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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 교성리에 위치한 진천향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01호로 지정되어 있다.6
진천에서는 생거진천 농다리축제가 열리기도 한다.그리고 진천의 명물인 농다리도 꼭 들러야 할 가치가 있다. 고려 초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돌다리인 농다리는 기이하면서도 정교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지네처럼 생겼는데, 장마가 지면 다리 위로 그대로 물이 흐르도록 설계되어 지금까지 온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밖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당한 금성대군의 사우, 조선 말 지극한 효성을 보였던 서한순을 기리는 효자문,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창건된 진천향교, 4세기경 백제토기 요지군인 산수리 백제요지 역시 진천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천에는 진천 종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진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철 생산지가 발굴된 곳이다. 단순히 철을 생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한 공예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진천에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는 종 박물관이 생긴 것은, 금속공예의 시발점과 금속공예의 정점이 만났다는 평을 내릴 만하다. 여기서는 종의 의미와 여러 종의 이미지를 살펴볼 수 있고, 종소리를 감상하거나 직접 타종해볼 수도 있다.
진천 군립 생거 판화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판화 전문 미술관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판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진천 향토민속자료전시관과 진천문화원은 진천의 향토자료를 수집하고 역사와 문화를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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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종박물관은 진천의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곳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2
진천 종박물관의 인근에는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이 위치해 있다.진천에서는 보다 체계적인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청주 공예관, 이천 도예촌 등과 연계된 진천 공예마을은 도자기, 목공예, 한지, 금속, 염색, 보석 가공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가 입주해 있어, 이곳에서 체험을 하거나 전시된 물건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천의 풍요로움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삼흥관광농원을 추천한다. 이곳은 나지막한 야산 자락에 과수원과 목장이 세워져 있는 휴양지로, 다양한 과수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1년 내내 수확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농원 내 시설도 현대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어 불편함을 느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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